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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클럽하우스에서

by tirol 2024. 10. 10.

새벽 여섯시 십오분
모자를 고쳐쓰고
허리띠를 조이고
신발끈을 묶는다
비장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일렬로 서서
보호크림을 바르는 사람들
빼놓은 건 없나
화장실은 다녀왔나
서로의 컨디션을 물어보머
결의를 다진다
맨 정신으로는 힘들었는지
옆자리에선 얼핏 술 냄새도 난다

골프를 모르는 외계인들이 보면
지구를 구하러 나서는
최후의 용사들인 줄 알겠다

18번의 전투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길
싸움에 지더라도
나라 잃은 백성처럼
슬퍼하거나 폭음하지 않길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짝대기로 하는 공놀이라는 걸
잊지않길 다짐하는
클럽하우스에서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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