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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by tirol 2024. 10. 23.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

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

떨어진 물새 찬 물새

훅,

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

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

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

꽃다발을 보내기에도

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

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

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

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나는 중얼거리네

 

당신,

우린 너무 젊은 연인이었어

우리는 너무 어린 죽음이었어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문학동네, 2011>

* tirol's thought

 

시인은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걸 정말 보았을까?

아니면 상상으로 본 것일까?

실제로 그걸 보았다면,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시를 읽으며 물새가 '툭' 떨어지는 순간을 그려보다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중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강가를 따라 걷던 주인공이 '툭'하고 옆으로 쓰러지면서 강에 빠지는 장면.

영화를 보다 말고 '아'하고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던 것도 같다.

어떤 예고의 못짓도 없이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로 쓰러지는 모습 앞에서

나의 눈썹도 잠깐 파르르 떨렸던가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떠오른다면

'술 취한 거북이처럼 꿈벅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꿈벅거리며 집어드는 물새는, 추억은, 발은 모두

차다.

그러고 보니 물새는 처음부터 '찬' 물새였구나.

찬 물새, 찬 물새, 찬 물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를 읽으며

나도 시인을 따라 중얼거리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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