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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아버지의 나이 - 정호승

by tirol 2005. 8. 4.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 tirol's thought

비 갠 하늘은 푸르고 푸르고 술마신 내 위장은 쓰리고 또 쓰리다.
술 기운이 쉽게 풀어지지 않으니까 기분이 자꾸 가라않는다. 그 와중에 이 시를 읽으니까 막연히 좀 착찹해지기도 하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예전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는 거, 그거 슬픈 일이다. 나눌 수 없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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