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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괜찮아 - 한강

by tirol 2005. 8. 29.

괜찮아

한강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 버릴까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문학동네 2004 여름/


* tirol's thought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머리가 바스라질 것처럼 아프더니 진물처럼 눈물이 나더라. 왜 그런가,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머리만 더 아프더라. 뒤늦게 시인을 따라 주문처럼 읊조려 보는 말, 괜찮아 이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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