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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누가 우는가 - 나희덕

by tirol 2005. 7. 27.
누가 우는가

나희덕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 tirol's thought

비나 한바탕 시원하게 내려줬으면 좋겠다. 올여름은 정말 끔찍하게 덥다. 신문 기사에서 얘기하기로는 평년에 비해 아주 심하게 더운 건 아니라고 하는데 내 생애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몸무게 때문인가?
빗방울들의, 나뭇잎들의, 나뭇가지들의 울음 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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