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394>
* source;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419.html
tirol's thought
'천진하게'와 '물끄러미' 사이의 멀고도 먼 거리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천진하게'의 쪽에서 '물끄러미'의 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중일까.
돌아갈 수 없는 일방통행의 길.
하긴 일방통행이라고 해서 모든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멈춰있는 차. 자의든 타의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영원히 멈춰있을 수도 있고.
시 속의 화자는 '사과나무의 꼭대기'를 보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지만
나는 그렇게 울었던 옛날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생각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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