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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새 - 송재학

by tirol 2009. 9. 24.



송재학

원거리를 이동하는 철새 무리의 맨 앞에서 나는 새의 머리는 다 벗겨진다고 한다. 가끔 우리의 가장도 마흔 살 무렵에 이미 대머리가 되지 않는가. 너무 먼 길을 날았던 새에게 비행 자세 그대로 멈추어 굳어버리는 것이야말로, 가끔 삶이 이대로 굳기름처럼 굳어버렸으면 하는 사람의 헛된 갈망에 다름이 아니다. 조류에 대한 내 안쓰러움이기도 하다. 목을 앞으로 맹렬하게 빼고 날아가는 새떼의 맨 앞자리와 몇 천 킬로를 이동하고 나서 반으로 줄어버린 몸무게가 있다면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생긴 멍 자국과 자주 다치는 무릎 인대도 있다.


* tirol's thought

요즘은 어쩌자고 이런 글들만 자꾸 눈에 띄는가?

사실 위의 글은 시는 아니고 송재학 산문집 '풍경의 비밀'이란 책에 나오는 글이다.
어느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걸 보고 송재학의 시인줄 알고 찾아보다가 알게되었다.
산문이란 걸 알고 다시 읽어보니 시가 아니라 산문 '같기도' 하다.
뭐가 시이고 뭐가 산문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딱 부러지게 얘기하긴 어렵다.
시인이 이걸 자기 시집에 넣고 시라고 우기면 시가 될까?

어쨌든,
이제 마흔살이 된 나는 아직
대머리는 아니지만 머리가 자꾸 빠진다.
철새 무리의 맨 앞에서 나는 새와는 달리
몸무게는 계속 늘어난다.
목욕탕에서 자주 미끄러지지는 않지만
무릎도 자주 아프다.

철새는 별자리와 바람으로
제 목적지를 찾는다던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건가
이렇게 머리까지 빠져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