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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소금창고 - 이문재

by tirol 2009. 9. 22.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이문재,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년 12월>

* tirol's thought

내가 벌써 가을을 타는 건가.
우연히 이 시를 읽다가 가슴이 괜히 먹먹해졌다.

지하 1층에 있는 선큰 가든에 앉아
가르릉거리듯 비스듬이 비치는
저녁 햇살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는데도
자꾸 생각이 났다.

요즘들어 캘린더의 날짜와 일정을
헤아려보는 시간이 늘었다.
마치 '북북서진하는 기러기떼를 세어'보듯이.

서른 살 무렵이었던가.
한강 둔치에 앉아 바라보던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있던 갈대 마른 꽃들'
반짝거리며 흐르던 강물.

얼마나 흘러온건가.
나는 마흔 살.

* source: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54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