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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삶의 나이 - 박노해

by tirol 2011. 1. 7.
삶의 나이

박노해
 

어느 가을 아침 아잔 소리 울릴 때
악세히르 마을로 들어가는 묘지 앞에
한 나그네가 서 있었다
묘비에는 3.5.8...숫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에 돌림병이나 큰 재난이 있어
어린아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구나 싶어
나그네는 급히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마을 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는 묘비에 나이를 새기지 않는다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
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하나씩 긋는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이렇게 묘비에 새겨준다오
여기 묘비의 숫자가 참삶의 나이라오
 

*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년 10월/

* source: http://blog.daum.net/jajak73/18341235


* tirol's thought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의 최근 시집에 실려있는 시.
새 시집은 지난 10년동안 써온 5천여 편의 시 중에서 304편을 묶어낸 것이라고 한다.

한때 사형수였던 시인은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8년여의 감옥 생활 끝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후 2000년부터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평화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 시는 시라기 보다 우화처럼 읽힌다.
실제 그런 마을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형식적인 면에서의 문학적 성취 여부를 따져본다면
너무 태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마을을 소개하는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참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더 읽어볼만한 글: http://goo.gl/Zi4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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