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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사랑 - 김수영

by tirol 2002. 11. 26.
사랑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이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tirol's thought

그해 오월에도 역시 장미꽃이 한창 피었드랬다. 그녀에게 이 시를 외워주며 아침 등교길에 본 장미꽃 이야기를 했던 것도 같다. 장미꽃 얘기 외에도 난, 시내버스가 코너를 도는 사거리부터 학교 앞까지 심어진 가로수 갯수가 몇개인지 아느냐고, 사거리에 나란히 서있는 열 몇개의 게양대 중에서 몇번째 새마을기가 내려가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너에게만 알려주겠노라고, 세상에 나밖에 아무도 모르는 그 숫자들을 얘기해주겠노라고 허세를 부렸다.(물론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해 줄 가로수의 숫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날 아침 한참을 걸어야만 했다.)
김수영 시 같지 않은 김수영의 시. 누군가는 노래를 일컬어 "침잠한 추억을 기억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부력"이라고 이야기했다지만, 이 시로 인해 나의 지난 추억 한자리가 끌어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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