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마종기

by tirol 2024. 12. 17.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마종기

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
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한다는
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 신약, '로마서' 8:24
 
<마종기, 이슬의 눈, 문학과지성사, 1997>


 

* tirol's thought

크리스마스에는 어떤 시를 읽으면 좋을까?
인공지능 앱인 Perplexity에게 '성탄절에 읽기 좋은 시를 추천해 줘'라고 질문을 던지자 금세 주르륵 목록을 보여준다.
박목월의 '메리 크리스마스', 이해인의 '성탄 편지', 나태주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신경림의 '성탄절 가까운' 등등
좋은 시들이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인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말구유의 아기 예수보다 산타와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을 더 먼저 떠올지만  크리스마스가 기쁜 날인 이유는 산타클로스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기 예수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기 부처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를 외치셨다는데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 가만히 누워 계셨다.
그때 거기에 기적은 없었다. 희망이 있었을 뿐.

마종기의 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는 로마서 8장 24절의 구절을 모티프로 한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공동번역)"
우리가 성탄절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산타의 선물인가, 하나님이 아기 예수를 통해  세상에 보내주신 구원의 선물인가?

강둑을 건너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하는 친구의 편지에 입맛을 다시는 시인의 희망은
친구와 함께 고즈넉한 하회마을을 산책하고 강진 초당 근처에서 고운 물살 안주 삼아 같이 한잔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그 희망 너머에 있는 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진짜 희망을 희망하기 위해 시인은 눈에 보이는 것을 지운다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새로울 것 없는 눈앞의 평범한 것들과 더불어 바램을 지운다.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 버린 야산을 다독거린다.'
그리고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지우고, 나누고, 다독거리고, 열어버린 시적 화자의 머리 위로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이번 성탄절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기 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가지길 기도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는 법을 배웠으면.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을 보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을 들었으면.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에서
성탄의 기쁜 소식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