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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반성 16 - 김영승

by tirol 2001. 9. 16.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김영승, 반성, 민음사, 1987.

* tirol's thought

어디에선가 처음 이 시를 보고 그냥 누군가가 끄적여놓은 낙서인 줄 알았다. 하긴, 이게 김영승의 시집 속에 있는 시라는 걸 알게되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시와 낙서사이. 시에는 큰 이미지로 다가오는 시와 한줄의 금언으로 가슴에 꽂히는 시와 감정의 어떤 현을 건드리는 시가 있다. 이렇게 시를 나눈다면 낙서도 그렇지 않겠는가? 이 시도 그냥 웃음이 나오는 낙서 같지만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보내고 만 쓸쓸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결심과 후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 고개 숙인 술꾼의 슬픔. 술꾼이 왜 술을 마시느냐구? 술을 마시는 자신을 잊고 싶어서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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