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 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 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문태준 시집,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년>
* tirol's thought
가을이 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는
"이 저녁 누가 죽어가나 보다'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가을 저녁의 시' 였다.
이제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시가 하나 더 늘게 생겼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가을이 되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는
"이 저녁 누가 죽어가나 보다'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가을 저녁의 시' 였다.
이제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시가 하나 더 늘게 생겼다.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로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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