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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너라는 햇빛 - 이승훈

by tirol 2001. 11. 29.
너라는 햇빛

이승훈


나는 네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재미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이승훈 시집 '너라는 햇빛' 중에서

* tirol's thought

그래도 생은 아름다운가?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세월은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인연은 늘 너무 이르거나 늦고
시간은 늘 주체할 수 없이 넘치거나
꼼짝못할만큼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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