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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강설 - 고은

by tirol 2006. 12. 19.
강설

고은


폐허(廢墟)에 눈 내린다.
적(敵)도 동지(同志)도
함께 모이자.
함께 눈을 맞자.
눈 맞으며 껴안고 울자.
폐허(廢墟)에 눈 내린다.
우리가 1950년대(年代)에 깨달은 것은
인산인해(人山人海)의 죽음이 아니라 사랑이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모든 죽은 사람들까지도 살아나서
함께 눈을 맞자.
눈 맞으며 울자.
우리는 분명 죄(罪)의 족속(族屬)이다.
눈을 맞자.
눈 맞으며 사랑하자.


* tirol's thought

언젠가
비보다 눈이 좋은 이유가
눈은 비보다 천천히 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시를 읽다보니
눈이 흰 색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모르는 척 아닌 척 해도
사람은 분명 '죄의 족속'이라는 것을 깨닫는 무의식이
순결한 눈의 흰 색에 끌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눈을 함께 맞으며 껴안고 울면
눈 맞으며 사랑하면
그 죄가 조금 덜어질까?
눈 맞는 사람도 없고
함께 눈을 맞으며 우는 사람도 없는 세상
눈 녹고 드러난 세상은
더욱 폐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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