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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

선잠 - 박준 선잠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tirol's thouht 연말이 가까와 오니 옛친구들 만날 일이 는다. 어제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집어먹는 안주처럼 오래되었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설렁설렁 나누며 술을 마셨다 한 친구가 당나라의 명필 '안진경' 얘기를 잠깐 꺼냈다가 집어 넣었다. '그해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이 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희미한 '그해'는 언제 적 .. 2019. 11. 23.
나는 내가 좋다 - 문태준 나는 내가 좋다 문태준 나의 안구에는 볍씨 자국이 여럿 있다 예닐곱살 때에 상처가 생겼다 어머니는 중년이 된 나를 아직도 딱하게 건너다보지만 나는 내가 좋다 볍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는 나의 눈이 좋다 물을 실어 만든 촉촉한 못자리처럼 눈물이 괼 줄을 아는 나의 눈이 좋다 슬픔을 싹 틔울 줄 아는 내가 좋다 tirol's thouht 어떻게 살아야 언제쯤 '나는 내가 좋다'라고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의 안구에 있는 볍씨 자국 같은 내 안의 상처들 하나 둘 셋 헤아리다가 그만 두었다 아직 멀구나 '나는 내가 좋다' 2019.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