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4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 허수경 찬 물새, 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을 본 양 허수경 저녁에물새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네 툭,떨어진 물새 찬 물새훅,밀려오는 바람내 많은 바람의 맛을 알고 있는 새의 깃털 사막을 건너본 달 같은 바람의 맛울 수 없었던 나날을 숨죽여 보냈던 파꽃의 맛오랫동안 잊혀졌던 순간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을 본 양나의 눈썹은 파르르 떨렸네 늦은 저녁이었어꽃다발을 보내기에도누군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기에도 너무 늦은 저녁찬 물새가 툭 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시간 나는 술 취한 거북처럼 꿈벅거리며바람내 많이 나는 새를 집어들며 중얼거리네 당신,나는 너무나 젊은 애인였어나는 너무나 쓴 어린 열매였어 찬 물새에게 찬 추억에게 찬 발에게그 앞에 서서 조용히깊은 저녁의 눈으로 떨어지던 꽃을 집어드는 양.. 2024. 10. 23. 저녁 스며드네 -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 허수경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 2019. 7. 6. 원당 가는 길 - 허수경 원당 가는 길 허수경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류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 둘.. 2003. 1. 18. 울고 있는 가수 - 허수경 울고 있는 가수 허수경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 사랑아, 너도 젖었니 감추어두었던 단 하나, 그리움의 입구도 젖었니 잃어버린 사랑조차 나를 떠난다 무정하니 세월아, 저 사랑의 찬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집' (문학과 지성사, 1992) * tirol's thought 지금 허수경은 서울에 없다. 독일 어딘가.. 2001. 9. 1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