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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4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 2006. 5. 9.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장석남, 왼쪽 가슴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2000. * tirol's thought 왜 모든 뒷모습은 슬픔인가? 아니 슬픔은 왜 언제나 뒷모습으로 기억되는가? 그녀의 뒷모습. 그녀가 타고 떠나던.. 2001. 9. 16.
배를 매며 - 장석남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장석남, 왼쪽 가슴아래께에 온 통증, 창작과 비평사, 2000. * tirol's thought 그래, 사랑은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오듯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본능적으로 잡아다 매는 사.. 2001. 9. 16.
사랑 - 김용택 사랑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 2001.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