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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시선2

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tirol's thought 겨.. 2022. 11. 18.
선잠 - 박준 선잠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던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다가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 tirol's thouht 연말이 가까와 오니 옛친구들 만날 일이 는다. 어제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배가 고프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집어먹는 안주처럼 오래되었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설렁설렁 나누며 술을 마셨다 한 친구가 당나라의 명필 '안진경' 얘기를 잠깐 꺼냈다가 집어 넣었다. '그해 우리는'으로 시작하는 이 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희미한 '그해'는 언제 적 .. 2019.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