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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호4

비단길2 - 강연호 비단길 2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습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2008. 11. 25.
마음의 서랍 - 강연호 마음의 서랍 강연호 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절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2006. 8. 19.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 강연호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강연호 솥뚜껑 위의 삼겹살이 지글거린다고 해서 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찍 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호기롭다 그들도 박박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남루나 불우를 그저 견디겠다는 듯 반쯤 남은 술잔은 건너편의 한가로운 젓가락질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 이제 출렁거리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 참다 참다 그예 저질러버린 생이 있다는 듯 창 밖으로 지그시 내리는 빗줄기 빨래는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쌀알을 펼쳐본들 점괘는 눅눅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마 이 밤이 지나가면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할 새벽이 온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이 술잔은 여기 이 생에 건네질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삼겹살을 뒤집어봐야 달라질 것 없고 희망은 늘 실날 같지만 오늘.. 2003. 3. 13.
스팀목련 - 강연호 스팀목련 강연호 내가 다니던 대학의 문과대 건물 옆엔 스팀목련이 한 그루 있다 해서 진달래 개나리보다 한참은 먼저 핀다 해서 해마다 봐야지 봐야지 겨울난방 스팀에 쐬여 봄날인 듯 피어나는 정말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철부지 목련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졸업을 하고 벼르고 벼르다 후딱 십년도 넘어버린 나는 늘 봄날을 놓치고 엎치락뒤치락 추위와 겯고트는 때 아닌 스팀목련도 놓치고 내가 대학 다니던 청춘도 놓치고 내가 대학 다니던 청춘도 놓치고 채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나는 늘 나도 놓치고 * 곁고틀다: [시비나 승부를 다툴 때 지지 않으려고]서로 버티어 겨루고 뒤틀다. * tirol's thought 이제 '스팀목련'은 다 졌을게다. 늦겨울에 한 번 보러가야지 했는데... '나도 늘 나를 놓치.. 2001.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