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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풍장·27 - 황동규

by tirol 2003. 3. 4.
풍장·27

황동규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 tirol's thought

사람의 오감중에서 가장 무딘 감각기관이 '청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귀가 한번 '트이면'
다른 감각기관으로는 알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고 들었다.
(지독스러운 오디오 매니아들이 그 예다)

내 귀는
어떤 소리를 듣고 있나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기'는 커녕
바깥에 비가 오는지 안오는지도
알아채지 못할만큼 둔한.

'세상 뜰 때'
'귀 그냥 두고'가겠다는
시인의 귀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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