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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유리창 - 정지용

by tirol 2007. 12. 28.

琉璃窓 1

정지용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朝鮮之光, 89호, 1930.1)

/정지용, 정지용 전집 1, 민음사, 2003/


* tirol's thought

겨울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게 비가 내린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면서 블로그에 올릴 시를 생각하다가 이 시를 떠올렸다.
언젠가 한 선배가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는 구절의 탁월함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구절을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에 비친 불빛'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오는 밤, 버스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바보'라는 말 따위를 끄적거리다가 그 '보석'을 본 것도 같다. (솔직히 유리창 위로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분명히 본 것이 맞지만 그 속에 별빛이나 불빛이 비치고 있는 걸 보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시를 읽으면서 내가 머릿 속으로 만들어낸 상상일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도 비가 온다면 눈여겨 보리라.)

인터넷에서 시를 찾다보니 이 시는 지용이 아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시라고 한다.(아마도 이 시가 교과서에 실려 있는 모양인데 '표준 시 해설'이 그렇게 나와 있었다.)
시를 반드시 한가지 방식으로 읽을 필요는 없고,
더 나아가 시인이 시를 쓴 동기에 맞추어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지만
해설을 읽고 보니 마음이 더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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