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시인세계 (2004년 겨울호)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월 - 이문재 (0) | 2008.10.24 |
---|---|
시월 - 나희덕 (0) | 2008.10.24 |
70년대산(産) - 진은영 (0) | 2008.09.09 |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1) | 2008.08.04 |
그냥커피 - 오탁번 (2) | 2008.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