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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맛이 없는 것 같은 맛 -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

by tirol 2011. 7. 15.
다니구치 지로의 '고독한 미식가'를 읽었다. 기대하지 못했던 묘한 맛의 음식을 먹은 느낌이다. 쓸쓸하지만 따뜻하고, 단순하지만 세밀하다.

난 맛없는 음식을 먹고 배부른 것도 싫지만 음식을 숭배하듯 얘기하는 식도락가도 싫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썩 마음에 든다.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노는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가는 것도 아니다. 밥을 먹을 때가 되었을 때 주변에 있는 음식점들 중에서 괜찮은 곳을 찾아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너무 많이 주문하걸 후회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식도 하고,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한다. 음식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시끄럽게 주방 보조를 혼내는 주방장과 싸움을 벌이고 그냥 나오기도 한다(난 이 에피소드가 참 맘에 든다). 그리고 자신이 먹은 음식과 그 음식점의 분위기, 추억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우리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음식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고 미식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진정한 미식이란 한 접시의 음식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싼 모든 것들 - 음식점의 분위기라든가 먹는 사람의 기분과 생각이라던가, 추억이라던가 - 을 음미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내게 주어진 인생의 한 순간을 음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쓰다보니 너무 거창해졌다-_-;;... 어쨌든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함!
참고로 아내에게 어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줬는데 반응이 영 마뜩찮았다.
'이거 뭐 이래? 음식 얘기도 없이 끝나는 에피소드도 있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얘기를 하다 만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대답은,
'어, 그게 이 책의 묘미야. 맛이 없는 것 같은 맛,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