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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소금창고 - 이문재

by tirol 2004. 6. 24.
소금창고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 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 tirol's thought

스무살 무렵 나에게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멀게만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얼른 서른 살이 되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면 '뭔가' 되있을 것만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심지어는 아이를 안고 있는 서른 살의 나를 그려보면서.

그러나 막상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별다른 일은 없었다.
대학원 마치고
서른살이 되던 그 해 5월에 취직을 하고
한참을 더 있다 결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서른 다섯에 난 '마흔 살'이란 나이를 생각한다.
서른 다섯에 생각하는 마흔 살은
스물 다섯에 생각하던 서른 살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얼마간의 막연한 두려움.

'세월은 가는 게 아니라 오는 것'이란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된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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