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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내외 - 윤성학

by tirol 2004. 6. 30.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창작과비평>2003년 여름호


* tirol's thought

아내와 나의 거리를 생각해본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거리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거나 할
우리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우리도 또한 서로에게
'감추고 싶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고'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지점을
찾으며 살아가겠지.

하지만
시인이 얘기하는,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가 나의 목표는 아니다.

그냥 그 적당한 거리의 언저리를 들락날락하며 살아가는 거,
너무 가까워져서 불편해지면,
'저리 좀 가'
라고 투덜거리기도하고
너무 멀리있는 것 같아 불안해지면,
'거기 있지? 너무 멀리가면 알아서 해!'
소리를 지르기도하고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믿어줘야겠지만)
멀든 가깝든 끝까지 함께 가는거.
그게 내 목표다.
아니 목표도 뭣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램,
그렇게 살게 될 것 같다는 예감 비스무리한 그 무엇
이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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