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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개 - 신경림

by tirol 2004. 6. 25.


신경림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쫓으라면 쫓고 물라면 물었다. 그러다가,

나이들어 기운이 빠지자 주인 그 개를 개장수한테 팔았다. 그리고 그는 살과 뼈가 따로 추려져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다. 주인도 끔찍이도 사랑하던 제 개의 고기를 먹으며 자못 흡족했다.

그 개는 죽어서 헐값의 가죽밖에 남긴 것이 없다. 가죽보다 더 값진 교훈을 남겼다는 거짓과 함께.

/창비시선 218, 뿔, 창작과 비평사,2002/


* tirol's thought

'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는 것'이 어디 개 뿐이랴.
매일 아침 이 땅의 수많은 샐러리맨들은
오라고 따로 말하지 않아도 오고
심지어는 오라고 하지 말까봐 걱정도 한다.
그리고 나이들어 기운이 빠지기도 전에 버림받는다.
이렇게 살다 죽어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땅에는 얼마나 많은 거짓 교훈들이 판을 치는지...

시를 읽고 나니
회사를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화악...
그러나...참아야 한다.

나는 이 땅의 거짓 교훈들에 너무 깊이 중독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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