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본 지 오래인 듯
장석남
가을 꽃을 봅니다
몇 포기 바람과 함께 하는 살림
바람과 나누는 말들에
귀 기울여
굳은 혀를 풀고요
그 철늦은 흔들림에 소리나는
아이 울음 듣고요
우리가 스무 살이 넘도록 배우지 못한
우리를 맞는 갖은 설움
그런 것들에 손바닥 부비다보면요
얘야 가자 길이 멀다
西山이 내려와 어깨를 밉니다
그때 우리는 당나귀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타박타박 길도 없이
가는 곳이 길이거니
꽃 본 지 오래인 듯 떠납니다
가을은 가구요
/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993/
* tirol's thought
가을이 갑니다.
가을 꽃을 볼 새도 없이
머리깍고 낮잠 한숨 자고 나면
훌쩍 지나버리고 마는
일요일 오후처럼
가을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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