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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TV 없는 주말

by tirol 2006. 1. 23.
지난 금요일에 TV가 고장이 났다.

TV 없는 세상은 황무지와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는 '시각문화 종사자'임를 자임하는 아내가 득달같이 A/S 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수리 기사는 토요일 점심 때나 되어서 왔다. TV를 뜯어본 수리 기사 얘기로는 전압 공급 장치 쪽에 이상이 생겼는데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수리비는 6-7만원 내외, 그것도 지금 당장은 안되고 화요일 저녁 때쯤이나 가능하다고 한다.

어쨌든 덕분에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 TV없는 주말을 보내게 되었는데 TV가 없다고 계속 투덜대는 아내와 달리 나는 아주 좋았다. 너무 허전하다 싶으면 간간히 음악을 들으며 아주 호젓한 주말을 보냈다. 평소에도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엔 아무 생각없이 TV 앞에 습관적으로 앉아있는 시간이 몇 시간쯤 있었는데 그 시간에 TV가 없으니까 괜히 그만큼 시간을 번듯한 느낌이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아내와 얘기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습관처럼 늦게까지 TV를 보는 아내가 체념 끝에 일찍 침대에 드는 것도 좋았다.(회사 일과 학교 공부로 빠듯하게 지내는 아내에게 피곤한데 밤 늦게 TV 좀 보지 말고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아내에게서 돌아오는 답변은 늘 '이게 쉬는 거'라는 얘기다.) 아내는 이런 나와 달리 TV 없는 시간들을 힘들어 했다.(반은 장난스러운 불평이고 반은 진심인 것 같다.) 결국 토요일 저녁엔 '영화라도 보러가자'고 해서 집 근처 극장에 가서 '나니아 연대기'를 봤고 엊저녁엔 인터넷으로 TV를 봤다.

난 이번 기회에 TV를 아예 치워버리자고 아내에게 넌지시 제안을 던져본다. 당장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익숙해지면 훨씬 더 여유로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을 꺼라고. 아내는 치울 때 치우더라도 일단 고쳐놓아야 다른 사람이라도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슬쩍 비껴간다. (허허...과연 그럴까? 알면서도 속아준다는 게 이런 것인가?)

TV를 고치러 온 수리기사 얘기론 TV가 고장난 이유가 '습기' 때문인 것 같다는데, 그럼 앞으로 거실에서 가습기를 자주 틀어볼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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