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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비단길2 - 강연호

by tirol 2008. 11. 25.
비단길 2

강연호


잘못 든 길이 나를 빛나게 했었다 모래시계는
지친 오후의 풍광을 따라 조용히 고개 떨구었지만
어렵고 아득해질 때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마저 가야 할 어떤 약속이 지친 일생을 부둥켜 안으리라
생각했었다 마치 서럽고 힘들었던 군복무 시절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습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賢者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 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던 잠시 눈물로 마음 덮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 tirol's thought

열살에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되었고,
서른 살에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십년이 흘러 내년이면 마흔이 된다.
이변이 없는 한,
나는 마흔 살에도 직장인일 것이다.
그럼
쉰에는?
예순에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겐 지도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지나 온 길을 지도로 그려볼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만 두었다.
누구에게 그 지도를 건넬 것인가,
지도 없이도 내가 온 그 길쯤은 누구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도 없이 살아온 세월,
누가 흉보지 않을까,
행여 길을 잘못 들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며 살아온 그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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