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by tirol 2004. 12. 29.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의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들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길을 홀로 걸어왔는지
지금 내 앞에 망연히 서 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


* tirol's thought

내 낡은 자판은 서러운 노래만을 기억하네
이젠 좀 흥겨운 노래들도 불러봤으면 싶은데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미소를 잃어버렸네
내 눈물의 길은 너무 깊이 패이고 패여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남았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자판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자판은 서러운 노래만을 기억한다네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2) 2005.01.14
강 - 구광본  (0) 2005.01.07
삼십세 - 임희구  (0) 2004.12.27
눈 오는 날 콩나물국밥집에서 - 복효근  (1) 2004.12.23
그림자 - 정현종  (2) 200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