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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 최승자

by tirol 2004. 7. 14.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꽃아다오.


* tirol's thought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있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
사랑을 둘러싼,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다.

바스라진 주먹을 쥐고
우는 너에게,
저 벽을 왜 내 혼자 깨야하냐고
소리치는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하나.

나도 콘크리트 벽이 되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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