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뿌리내린 곳에서의 슬픔

최승호


어떻게 긴 겨울을 넘겼는지 모른다.
견디려고만 했지
봄이 와도 봄에 내놓을
꽃 한 송이 준비하지 못하였다.

눈이 오면 공뺏기놀이를 하던
개와 나에게
봄은 당혹스럽게 왔다.
자목련나무는
언제 어디서
봄의 꽃들을 마련한 걸까.
럭비공만한 자목련꽃들이 햇살 속에 벌어져
향기를 토하는 것을
발걸음을 멈춘 채 개와 나는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개의 슬픔을 느꼈다.


/시집, '그로테스크',1999/


* tirol's thought

아침 출근 길에 보니 꽃이 피었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시인 말대로 그 꽃들은 언제 어디서 봄의 꽃들을 마련한걸까?
때론 '견디는 것'만으로도 힘든 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견디는 것'은 어디까지나 '견디는 것'일 뿐이다.
개와 내가 공뺏기 놀이를 하며 겨울을 견디는 사이에 딱딱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봄꽃을 준비한 자목련.
그 자목련을 보면서 느끼는 슬픔.
이 봄의 당혹스러움.
반응형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