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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과 세상

대한민국 직장인의 사는 법

by tirol 2009. 12. 18.

일개미의 반란 - 우리가몰랐던 직장인을 위한 이솝우화’(정진호 지음, 21세기북스)은 직장인들이 언젠가 들어봤거나 언제고 듣게 될 회사라는 조직의 생리와 그 속의 인간관계를 다룬다. 저자에 의해 묶이고 정리된 이야기는 조각난 이야기들이 갖지 못했던 통일성을 갖추고 독자가 ‘회사 생활의 법칙에 관한 깨달음(이라고까지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을 얻게 도와준다. 그 법칙은 “살아남아라로 요약된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저자가 연재했던 글들을 골라 묶은 이 책은이솝 우화의 내용을 오늘날 직장인의 생활에 대입하여 해석하고,어떻게 회사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조언한다. “우리가 몰랐던이란 책의 부제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언젠가 선배와 소줏잔을 기울이며 들은 이야기이고, 어떤부분은 동료와 담배를 피며 나눈 이야기이고, 또 어떤 부분은 풀 죽어 있는 후배에게 커피잔을 건네며내가 한 이야기이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거나 배우진 않지만 직장인들은 누구나 회사 안에서 이런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배우거나 스스로 깨닫는다.


누구나 알고 있거나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눈 밝고 부지런한 사람이 구슬을 꿰는 법이다. 뒹구는 구슬은 때에따라 빛나 보이기도 하고 쓸모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누군가 실로 꿴 구슬은 최소한의 효용을가진다.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가 마음에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효용이 아닌 취향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않겠다. 더구나 요즘은 회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런 류의 얘기들을 나눌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것도 사실이다(어쩌면 이런 변화가 이런 류의 책들이 나오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회사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다….이렇게 해야 성공한다이렇게 살아남아라…” 안다. 하지만 아는 것은 깨닫는 것과 다르고, 깨닫는 것은 행동하는 것과 다르다. 알아도 못하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많은가? 누가 담배가 해로운 걸 몰라서 못 끊나? 담배 때문에몸이 안 좋다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깨닫지만 그것이 곧바로 금연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회사 생활의여러 사례를 모아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한 일반론을 만들어내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반대로 성공적인 회사 생활의 원칙을 배우고 깨달아서 성공의 사례를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 변수가 너무 많다. 돌아보면 곳곳이 지뢰밭이다.

 

어느날 갑자기 직장인을 위한 새벽 영어회화반에 등록하는 것만으로 성공에 도움이 될 만큼의 영어 실력을 늘리기는어렵다. 직장인 영어반의 실제 효용은 글로벌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다고 직장 생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은아니더라도 끝끝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적어도 자기계발을 위해 독서하는 직장인이라는 자기 위안에 도움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P.S

그래도 명색이 시 읽어주는 남자라는블로그명을 달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시가 있어 사족으로 덧붙여 봅니다.


발령났다


김연성


그는 종이인생이었다 어느 날

흰 종이 한 장 바람에 휩쓸려가듯이 그 또한

종이 한 장 받아들면 자주 낯선 곳으로 가야했다

적응이란 얼마나 무서운 비명인가

타협이란 또 얼마나 힘든 악수이던가

더 이상 아무도 그를 읽지 못할 것이다

얇은 종잇장으로는 어떤 용기도 가늠할 수 없는데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읽는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그 골목의 정체없는 어둠이다

그는 늘 새로운 임지로 갈 때마다 이런 각오했다

"타협이 원칙이다

그러나 원칙을 타협하면 안 된다"


나일 먹을수록

이 세상에선 더 이상 쓸모없다고

누군가 자꾸 저 세상으로 발령낼 것 같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원칙까지도 타협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

허리까지 휘어진 어둠 속에서

꺼억꺼억 토할지 모른다

모든 과거는 발령났다 갑자기,

먼 미래까지 발령날지 모른다


시간은 자정 지난 새벽1,

골목 끝에 잠복해있던

검은 바람이 천천히 낯선 그림자를 덮친다


/《미네르바》 2006년여름호/


* tirol's thought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면서

스스로의 목덜미를 부여매는 짐승을 생각한다.

저녁마다 회사문을 나서면서

하룻 저녁 동안의 귀휴를 허락받은 재소자를 떠올린다.

내 손으로 묶고

내 손으로 잠그는 인생.

가끔씩 종이 한장 받아들면

짐 싸들고 이감가는 죄수처럼

낯선 곳으로 가야하는 신세.


'허리까지 휘어진 어둠 속에서

꺼억꺼억 토'하는 울음

가엾은 이 땅의 샐러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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