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483 티롤의 여덟번째 포임레러 [2003.2.9. SUN. 티롤의 여덟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새해들어 처음으로 띄우는 포임레러네요. 뭐하느라 이제야 보내느냐고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 붙들어 맨 구속'이란면에서 이것도 연애와 닮은 구석이 있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구속때문에 행복해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답답해하기도 하고 미안해지기도 하고^^. '외로운 자유'와 '따뜻한 구속' 사이의 흔들림. =-=-=-=-=-=-=-=-=-=-=-=-=-=-=-=-=-=-=-=-=-=-=-=-=-=-= ◈ Today's Poem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채호기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 2003. 2. 16. 사랑은 - 채호기 사랑은 채호기 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사랑은 그렇게 왔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사랑은 그렇게 갔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사랑은 그렇게.. 2003. 1. 31. 원당 가는 길 - 허수경 원당 가는 길 허수경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류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 둘.. 2003. 1. 18. 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 이문재 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문재 오늘 하루도 영 정갈하지 못하다 어제는 불길했고 또 그저께는 서툴렀다 가끔 계절이라는 것이 이 도시를 들렀다 간다 신기하 다 나른해 본지도 오랜만이다 피곤으로 단단해지는 퇴 적암들 나이에는 다들 금이 가 있다 비둘기 수백 마리 가 1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며 낮게 난다 새들도 도시 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버린 성냥불 때문에 혹은 켜놓고 나온 컴퓨터 때문에 회사가 불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 기면 잠이 안 온다 온갖 죽음의 아가리들이 도처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 는 게 보인다 퇴근길에도 한 발짝도 떼놓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박모가 살얼음처럼 깔리고 갑자기 내가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진다 옛날에 배가 자주 고프던 시절에 온 몸을.. 2003. 1. 6. 티롤의 일곱번째 포임레러 [2002.12.31. TUE. 티롤의 일곱번째 포임 레러~] ◈ tirol's greeting 어느새 2002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란 걸 미리 알았다고 해서 이별의 서운함이 덜하지 않듯이, 1월1일이 있으면 12월31일도 있는 게 달력인란 걸 안다고 해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이 덜해지진 않는가 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쉬움 없고, 후회없던 12월31일이 어디 있었나요? 매스컴에서는 '유난히도'라는 말에 유난스럽게 힘을 주어가며 올해의 '다사다난했음'을 강조해 대지만 또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한해는 언제였습니까? 살아가는 일이란, 이쪽에서 보면 박진감 넘치는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같기도 하고... 저쪽에서 보면 우수수 잠이 밀려드는 프랑스 예술영화 같기도 하고... 결국 그.. 2003. 1. 2. 비가 와도 젖은 者는 - 오규원 비가 와도 젖은 者는 오규원 순례 -1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싶어 다시 한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江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江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魚族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은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번뇌, 날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者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 시집, 사랑의 기교, 민음사, 1978/ * t.. 2003. 1. 1. 이전 1 ··· 67 68 69 70 71 72 73 ··· 8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