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조흔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tirol's thought
어제 저녁 건축 관련 강의 말미에 이 시를 읽었는데,
오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다시 이 시를 만났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안도현 시인의 '연탄'이란 시 생각도 나고
몇 번을 읽는 데 괜히 마음이 울렁댄다.
나는 누구의 의자였을까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어디에 있을까
세상에 별거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뭔가
누군가 내어준 의자에 기대 숨을 돌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주억거리다가
'싸우지 말고 살아라'는 말에 눈이 멈춘다.
내 의자 네 의자, 이거냐 저거냐, 지금이냐 나중이냐 따지지 말고
'싸우지 말고' 살 일이다.
그냥 그렇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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