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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2

칠 일째 - 이응준 칠 일째 이응준 카프카는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다. 나는 열여덟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타클라마칸은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서른이 되던 날 밤 차라리 그런 이름이었으면 했다. 바이러스는 라티어로 毒이라는 뜻이다. 나는 요즘 그런 이름으로 지낸다. 납인형 같은 生이 經을 덮고 칠일째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이 세계를 소독할 유황불을 기다리고 있다. /이응준 시집,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세계사, 2002/ * tirol's thought 나는 요즘 무슨 이름으로 지내고 있나? 2003. 7. 20.
장마를 견디며 - 이응준 장마를 견디며 이응준 물소들이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예전보다 더 낭랑해지고 나는 또다시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 하는 것이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 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 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사귀어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지나간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 켠에서부.. 2003.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