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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2

높새바람같이는 - 이영광 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 tirol's thought '높새바람'은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부는데 동쪽 산을 타고 오르며 품고 있던 수증기를 거의 비로 내려버려 서쪽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온도가 .. 2019. 8. 31.
비누에 대하여 - 이영광 비누에 대하여 이영광 비누칠을 하다 보면 함부로 움켜쥐고 으스러뜨릴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누는 조그맣고 부드러워 한손에 잡히지만 아귀힘을 빠져나가면서 부서지지 않으면서 더러워진 나의 몸을 씻어준다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다 힘을 주면 더욱 미끄러워져 나를 벗어나는 그대 나는 그대를 움켜쥐려 했고 그대는 조심조심 나를 벗어났지 그대 잃은 슬픔 깨닫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지 끝내 으스러지지 않고 천천히 닳아 없어지는 비누처럼, 강인하게 한번도 나의 소유가 된 적 없는데 내 곁에 늘 있는 그대 나를 깊이 사랑해주는 미끌미끌한 그대 /이영광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 창작과비평사, 2003/ * tirol's thought 사람들이 '함부로 움켜쥐고 으스러뜨릴 수 있는 것은/세상에 없.. 2006.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