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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2

오늘, 쉰이 되었다 - 이면우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 서른 전, 꼭 되짚어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론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2019. 5. 10.
기러기 - 이면우 기러기 이면우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고 아이가 물었다 세상 저 끝에서 온다고 말해주었다. 저렇게 떼지어 가는 거냐고 아이가 또 물었다 세상 저 끝으로 가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어디가 세상 끝이냐고, 이번엔 정색하며 올려다 본다 잠깐 궁리 끝, 기러기 내려앉는 곳이겠지, 하고 둘러댔다. 호숫가 외딴 오두막 가까이 키보다 높은 갈대들 손 저어 쉬어 가라고 기러기 부르는 곳 저녁 막 먹고 나란히 서서 고개 젖혀 하늘 보며 밭고랑에 오줌발 쏘던 깊은 겨울. /이면우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창비시선 211), 창비, 2001년 10월 / * tirol's thought 내겐 아직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고 질문을 던질 아이가 없다. 아이가 없는 나는, '저 새들은 어디서 오느냐, 저렇게 .. 2006.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