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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4

목도장 - 장석남 목도장 장석남 서랍의 거미줄 아래 아버지의 목도장 이름 세 글자 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 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 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 국경이 헐거워 자꾸만 넓어지는 이 나라를 나는 저녁 어스름이라고나 불러야 할까보다 어스름 귀퉁이에 아버지 흐린 이름을 붉게 찍어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표구가 되었으나 그림은 비어있네 * tirol's thought 아버지는 무슨 서류에 그렇게 도장을 찍고 다니셨기에 도장이 문턱처럼 닳았을까 헐거워지는 국경처럼 빛과 어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저녁 어스름이면 생각나는 것들 낙관도 찍고 표구도 되었는데 그림은 비어있다네. 아버지가 물려주신 흐린 나라는 빈 그림으로 내 앞에 있네. 2022. 1. 11.
저물 무렵 - 신동호 저물 무렵 신동호 황혼이 어깨위에서 오래도록 머물러주길 바랬습니다 손때를 많이 탄 느티나무 밑둥으로 풀벌레들이 기어드는 무렵 언덕으로 저녁연기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켠이 아득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아 거기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겨울 하늘에 맨 돌팔매질을 하던 황혼이 물든 들녁을 이내 바라보고 섰던 언덕배기엔 썰매타기와 연날리기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쓸쓸한 저녁을 위해, 저물무렵 못내 그리운 마음의 아련함이란 그 때문일까요 낮동안, 그래서 아이들이 피운 부산스러움과 먼지더미는 아름다운 게 아닌지요 언덕배기에 앉으면 당신이 자라온 마을과 지나온 길이 함께 어두워져가고 그때 불어오던 바람이 아 당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가슴 시리지 않던가요 지나온 길위에.. 2003. 10. 14.
가정 - 박목월 家庭 박목월 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詩人의 家庭에는 알 電燈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地上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 박목월 시집. 지식산업사/ *tirol's thought 중학교 다닐 때 나는 뭐가.. 2001. 9. 16.
흑백사진 - 티롤 흑백 사진 tirol 자 여길 보세요 웃어요 그래 옳치 싸구려 사진기를 든 젊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저분한 흙담아래 까만 고무신 바지조차 돌려입은 저 아이의 통통한 미소는 키작은 채송화 향기 어스름한 저녁 하늘 훈훈히 흐르는 굴뚝 연기와 노오랗게 묻어나는 감자타는 내음 어느새 창밖은 암실처럼 어두워지고 눈물처럼 밀려드는 먼 산동네의 불빛 꺼칠해진 턱을 만지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빛바랜 세월의 그림자 나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1992.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