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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2

첫사랑 - 심재휘 첫사랑 심재휘 장충동에 비가 온다 꽃잎들이 서둘러 지던 그날 그녀와 함께 뛰어든 태극당 문 앞에서 비를 그으며 담배를 빼물었지만 예감처럼 자꾸만 성냥은 엇나가기만 하고 샴푸향기 잊혀지듯 그렇게 세월은 갔다 여름은 대체로 견딜 만하였는데 여름 위에 여름 또 여름 새로운 듯 새롭지 않게 여름 오면 급히 비를 피해 내 한 몸 겨우 가릴 때마다 비에 젖은 성냥갑만 늘었다 그래도 훨씬 많은 것은 비가 오지 않은 날들이었고 나뭇가지들은 가늘어지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늘어지기는 여름날 저녁의 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후로 많은 저녁들이 나를 지나갔지만 발아래 쌓인 세월은 귀갓길의 느린 걸음에도 낡은 간판처럼 가끔 벗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른 꽃잎에게 묻는 안부처럼 들춰 보는 그 여름 저녁에는 여전히 버스만 .. 2021. 4. 18.
우산을 쓰다 - 심재휘 우산을 쓰다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 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 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 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 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 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 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 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 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 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 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 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 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 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 오래전부터 진창이었다고 쓰지 않는다 우산을 쓴다 tirol's thought 비는 언젠가는 올 것인데 비가 오지 않는 동안은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비가 오지 않은 여러 날.. 2020.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