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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2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 2011. 3. 4.
인중을 긁적거리며 -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심보선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 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 뿐이라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라고 믿어 왔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어쩌다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 2010.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