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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3

단풍나무 빤스 - 손택수 단풍나무 빤스 손택수 아내의 빤스에 구멍이 난 걸 알게 된 건 단풍나무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아내의 꽃무늬 빤스를 입고 볼을 붉혔기 때문이다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을 넘어 아파트 화단 아래 떨어진 아내의 속옷, 나뭇가지에 척 걸쳐져 속옷 한 벌 사준 적 없는 속없는 지아비를 빤히 올려다보는 빤스 누가 볼까 얼른 한달음에 뛰어내려가 단풍나무를 기어올랐다 나는 첫날밤처럼 구멍 난 단풍나무 빤스를 벗기며 내내 볼이 화끈거렸다 그 이후부터다, 단풍나무만 보면 단풍보다 내 볼이 더 바알개지는 것은 *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 (창비, 2006) * source: http://blog.naver.com/sotong/50126373269 tirol's thought 백만년 만에 올리는 포스팅인 것 같다 (실제로는 지.. 2011. 11. 17.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손택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손택수 명절 앞날 세탁소에서 양복을 들고 왔다 양복을 들고 온 아낙의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내 양복 주름이 모두 아낙에게로 옮겨간 것 같다 범일동 산비탈 골목 끝에 있던 세탁소가 생각난다 겨울 저녁 세탁, 세탁 하얀 스팀을 뿜어내며 세탁물을 얻으러 다니던 사내 그의 집엔 주름 문이 있었고 아코디언처럼 문을 접었다 펴면 타향살이 적막한 노래가 가끔씩 흘러나왔다 치익 칙 고향역 찾아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스팀을 뿜어내던 세탁소 세상의 모든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온몸에 둘둘 감고 있다고 생각했던 집 세탁소 아낙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이 접혔다 펴지며 아련한 소리를 낸다 /손택수, 《시평》, 2008년 봄호/ * source: 윤성택 시인의 좋은 시 읽기 * tirol's th.. 2008. 6. 12.
벚나무 실업률 - 손택수 벚나무 실업률 손택수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닌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 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 현대문학, 2006년 3월호/* tirol's thought 바다 건너 멀리있는 프랑스에서 시위가 한창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시위의 발단은 우파정부가 내놓은 ‘최초고용계약법’ 때문. 이 법에 따르면 기업이 26세 미만의 젊은이를 고용했을 때 2년 이내에는 고용주가 재량껏 해고할 수 있다고 한.. 2006.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