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보글판12

겨울 강에서 - 정호승 겨울 강에서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겨울 강 강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정호승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창비, 1979/ * tirol's thought 출근 길에 보니 강남교보문고 벽에 걸린 글판이 바뀌었다. 어디서 나온 글인가 찾아보니 정호승의 시다. 그런데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겠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나? 흔들리기 싫다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면 갈대가 아니지 않을까? [2005.12.1-2006.3.7] 2006. 1. 5.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 tirol's thought 출근길에 보니 교보생명 글판이 바뀌었다. 누구의 글인가 하고 찾아보니 마종기 시인의 글이다. 어떤 글들은 떨어져.. 2005. 9. 9.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tirol's thought 2004년 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걸렸던 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김용택은 '아픈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하더니 도종환은 '흔들림'을 이야기한다. '흔들림'과 '아픔'을 생각하며 보는 꽃은 남다르다. 세상 천지가 꽃들로 가득한 봄날,.. 2005. 5. 3.
낯선 곳 - 고은 낯선 곳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 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 tirol's thought 내친 김에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인용되었던 시들을 찾아보고 있다. 고은 선생의 이 시는 1998년에 발췌 인용되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성경에도 이 비슷한 얘기가 창세기에 등장한다. 신의 음성을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 2005. 4. 29.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계사, 1989/ Tracked from http://210.178.26.193/~weplus/tt/index.php?pl=105 * tirol's thought 교보문고 담벼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이 글귀를 보고 누구의 것인가 궁금해 했는데 정현종이었구나. 2005. 4. 27.
바람에도 길이 있다 - 천상병 바람에도 길이 있다. 천상병 강하게 때론 약하게 함부로 부는 바람인 줄 알아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바람은 용케 찾아간다. 바람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가는데 바람은 바람길을 간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 tirol's thought 광화문에 가서 눈크게 뜨시고 찾아보시라. (사실은 보통으로 떠도 조금만 둘러보면 찾을 수 있다.) 2003.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