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가재미 - 문태준

tirol 2005. 3. 10. 17:15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넌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현대시학' 2004년 9월호/


* tirol's thought

오늘, 후배 K의 블로그에서 읽었다.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 문학평론가 등 문인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 오늘의 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로 뽑혔다고 한다. 문태준 시인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마음으로 시를 썼을테고, 얼마전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배 K도 이 시를 마음으로 읽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마음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일하는 짬짬이 관련 기사와 기사에 언급되었던 다른 시를 찾아 읽었다. 시도 좋지만 기사 속에 나오는 시인의 말들이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기사에서 언급된 다른 시인들의 시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