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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 강연호

by tirol 2003. 3. 13.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강연호


솥뚜껑 위의 삼겹살이  지글거린다고 해서
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찍 취한 사람들은 여전히 호기롭다
그들도 박박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남루나 불우를 그저 견디겠다는 듯
반쯤 남은 술잔은 건너편의
한가로운 젓가락질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
이제 출렁거리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
참다 참다 그예 저질러버린 생이 있다는 듯
창 밖으로 지그시 내리는 빗줄기
빨래는 오래도록 마르지 않고
쌀알을 펼쳐본들 점괘는 눅눅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아마
이 밤이 지나가면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할 새벽이 온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이 술잔은
여기 이 생에 건네질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삼겹살을 뒤집어봐야 달라질 것 없고
희망은 늘 실날 같지만
오늘의 운세는 언제나 재기발랄 명쾌하다
62년생 범띠, 살다 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 tirol's thought

분명한 것은 아마
이 밤이 지나가면 냉장고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켜야 할 새벽이 온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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