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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산후병동 - 김미령

by tirol 2007. 9. 28.

산후병동

김미령


창밖의 안테나가 바람에 흔들린다
무른 생선 가시처럼 높고 가늘게 서서
지나는 구름에 젖을 물리고 옷을 추스르지도 않고
희부연 눈빛으로 마냥 어딘가를 바라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환한 밀실에서
헝클어진 신음과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메스 위를 비켜가고
링거병 질질 끌며 여자들이 복도를 걸어다닐 때
밖에선 차들이 사람들이 빠른 물살처럼 지나갔다
산후병동의 우뚝 정지한 시간 밖으로
웃음소리와 기계의 잡음들이 돌아나가고
마침내 수문을 열어 몸속을 흘려보낸 여자 하나가
보낭을 안고 발을 헛디디듯 세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까무러칠 듯한 봄빛 속으로
새벽 병실의 기침 소리 사이마다
까무루룩 벚꽃은 꿈처럼 지고
눈물은 거친 밤들을 적셔 한 시절을 잠시 잊게 한다

병실 앞을 서성이던 축하객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즉한 어둠이 찾아올 때면
당직 간호사의 새벽 플래시 불빛을 숨죽이고 바라보며
그녀는 울 것이다
불빛이 더듬고 지나간 자리에 희미하게 고이는 것이
천천히 고요를 회복하고 있는 시간의 서성임 같은 것임을
그리고 부푼 배가 쓸쓸하던 그날이 그리워질 때쯤
물 빠진 호수 바닥처럼 텅텅 그녀는 울 것이다

* source:   윤성택 시인의 홈페이지 - '좋은 시 읽기'
 

* tirol's thought

아내의 배가 남산만큼 불렀다.
11월이 산달이니 이제 한달 조금 더 남은 셈인데,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배가 더 불룩해지는 것 같다. 아내의 부푼 배를 보면서, '힘들겠다' 는 생각이 들긴 하는 데 어쨌거나 그건 생각일 뿐이고, 남자들은 결국 아이를 품고, 해산하는 여자들의 심정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구나 싶다.
부푼 배를 보면서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떤 기분일까?
시 속의 화자처럼 울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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