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어주는 남자

빈 마당을 볼 때마다 - 장석남

by tirol 2002. 11. 8.
빈 마당을 볼 때마다

장석남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어느 꽃나무 아래 앉아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풀잎 끝에서 흔들리고 있다

꽃이 시들고 있다
이미 무슨 꽃인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도 너는 있다

빈 하늘을 볼 때마다 너는 떠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훌쩍 서 있다

나는 저 마당보다도 가난하고
가난보다도 가난하다
나는 저 마당가의 울타리보다도 가난하고
울타리보다도 훌쩍 가난하다
―가난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고
너는 훌쩍 없고
없고 그러나
내 곁에는 언제나 훌쩍 없는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뿐인 심장을 만진다


* tirol's thought

'훌쩍' 이 시를 읽으며
마음 속의 또 다른 내가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시 읽어주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 김수영  (0) 2002.11.26
의자 - 김명인  (0) 2002.11.26
엄마 걱정 - 기형도  (0) 2002.11.07
어느 맑고 추운 날 - 박정대  (0) 2002.11.05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0) 2002.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