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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번역) 연금술사 1

by tirol 2003. 3. 8.
연금술사

프롤로그

연금술사는 대상(隊商)의 누군가가 가져온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을 훓어보던 그는 나르시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매일같이 호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던 청년 나르시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에 너무나도 반해버린 나르시스는 어느날 아침 호수로 뛰어 들어 죽고 말았다. 그가 빠져 죽은 곳에 꽃이 한 송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수선화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책의 저자는 이것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고 있었다.
나르시스가 죽었을 때 숲의 여신들이 나타나 그 호수를 살펴보았더니, 예전에는 맑은 물이었던 호수가 눈물의 호수로 바뀌어 있더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너는 왜 울고 있니?” 여신이 물었다.
“나르시스 때문에요” 호수가 대답했다.
“아, 나르시스 때문에 울고 있었구나. 우리는 숲 속에서 언제나 그를 쫓아다녔지만 넌 그의 아름다움을 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지.”
“그런데, 나르시스가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건 네가 제일 잘 알잖니?” 여신들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바로 네 옆에서 그가 날마다 자기 모습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릎을 꿇고 있었잖아.”
호수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난 나르시스 때문에 울고 있어요. 하지만 난 한번도 나르시스가 아름답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요. 내가 우는 이유는 그가 내 옆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을 때마다 그의 깊은 눈 속으로 비치던 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군.” 연금술사는 생각했다.


1.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였다. 소년이 그의 양떼들을 몰고 어는 버려진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황혼이 지고 있었다. 지붕은 이미 예전에 무너진 상태였고 성물안치소가 있었던 곳에서는 무화과가 자라고 있었다.
소년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모든 양들이 못쓰게 되어버린 문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후에, 밤사이 양떼들이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판자를 몇 개 걸쳐두었다. 이 지역에 늑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한 녀석이라도 밤 사이에 길을 잃고 헤매기라도 하면 소년은 그 다음날 종일 그 녀석을 찾아 다니느라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는 쟈켓으로 바닥을 대강 치운 다음 막 읽기를 끝낸 책을 베개 삼아 누웠다. 그는 혼자 중얼거려본다. 좀더 두꺼운 책을 읽어볼까? 좀더 오래 읽을 수 있을테고 베게로 쓰기에도 더 편할꺼야.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아직도 주위는 어두웠다. 소년은 눈을 들어 반쯤 무너진 지붕 사이로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좀 더 자고 싶어. 소년은 생각했다. 그는 일주일 전과 똑 같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여전히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잠이 깨고 말았다.
소년은 일어나서 지팡이를 들고 아직도 자고 있는 양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일어나자마자 대부분의 양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신비한 기운이 그의 삶을 양들의 삶에 묶어놓은 것과 같았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먹이와 물을 찾아 양떼들을 몰고 시골곳곳을 누비며 보냈다.  “이 녀석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이젠 내 일과를 꿰고 있는 것 같아.” 소년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잠시 후 소년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서 오히려 바로 나 자신이 양떼들의 일과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몇몇 녀석들은 잠을 깨우는 데 좀더 시간이 걸렸다. 소년은 지팡이를 가지고 한 마리씩 쿡쿡 찌르며 녀석들의 이름을 불렀다. 소년은 언제나 양들의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깊은 인상을 남긴 책들의 일부를 양떼들에게 읽어주기도 했고, 들판의 목동이 겪어야만 하는 외로움이나 행복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끔은 그가 지나온 마을에서 본 것들에 대해서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며칠 동안 그가 이야기한 것은 오직 한 가지였다. 소녀. 나흘 전쯤 도착했던 마을에 살고 있는 상인의 딸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는 일년 전쯤 딱 한번 그 마을에 들렀었다. 그 상인은 별로 볼 것 없는 가게의 주인이었는데, 자신은 절대 속을 수 없다면서 언제나 자기가 보는 데서 양들의 털을 깍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년이 양떼들을 데리고 거기에 간 것은 한 친구가 그 가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양털을 좀 팔고 싶은데요” 소년은 상인에게 말했다.
가게는 바빴고 상인은 목동에게 오후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소년은 상점의 계단에 앉아 배낭 속의 책을 꺼내들었다.
“목동들이 책 읽는 법을 아는지 몰랐어” 그의 뒤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긴 머리와 무어의 침략자를 어렴풋이 떠오르게 만드는 눈을 가진,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소녀였다.
“나는 보통 책보다 양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죠.” 그가 대답했다.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는 자신이 상인의 딸이라는 사실과, 다른 곳의 사람들과 별 다를 것이 없는 그 마을의 일상사들에 관해 말해주었다. 목동은 그녀에게 안달루시안의 시골들과 그가 잠시 머물렀던 마을들로부터 알게 된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양떼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즐거운 변화였다.
“어떻게 읽는 법을 배웠지?” 어느 한 순간 소녀는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것처럼, 학교에서.”
“그런데 왜 이런 목동이 된 거야?”
소년은 소녀의 질문을 피해나가려고 잠시 우물쭈물 했다. 소녀는 분명히 자신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소년은 알았다. 소년은 계속해서 자신의 여행과 소녀의 영리함에 대해 얘기했다. 무어인을 닮은 눈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점점 커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년은, 오늘 하루가 저물지 말았으면, 그녀의 아버지가 계속 바빠서 그를 한 사흘쯤 기다리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소년은 자신이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한 장소에 영원히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검은 머리결을 가진 그 소녀와 함께라면 그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상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네 마리의 양떼들의 털을 깍으라고 요구했다. 그는 양털 값을 지불하고 그 다음해에도 다시 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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