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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by tirol 2005. 1. 28.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 tirol's thought

며칠 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았다.
김종삼의 시를 읽으며 나는 영화 속의 '소피'를 떠올린다.
황야의 마녀가 건 저주 때문에 어느날 늙은 노파가 되어버린 소피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자기를 그렇게 만든 마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 마녀가 힘을 잃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호호 할머니가 되자 불평없이 그녀를 수발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들을 떠올린다.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

물론 영화는 영화이고 (더구나 만화!) 현실에서 오직 덕성만을 갖춘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약간의 결함이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그런 덕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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